일기는고독한사람의마음의친구이며,위로의손길이며,또한의사이기도하다.

도대체 누가 잠잠하게 할 것인가. 창문과 발코니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벌이는 매일의 잔치는 누가 감독할 것인가.

그리고 술집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옷도 검열에 귀속시켜 점잖은 감독관으로 하여금 덜 야한 옷을 만들도록 감독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남녀가 함께 모여 하는 야한 대화들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고 어디까지 허용가능한 지는 누가 정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모든 하릴없는 유락지들, 사악한 친구들은 누가 금지하고 갈라놓을 것인가.

이런 모든 일들은 외설물이 규제된다 하더라도 그대로 존재할 것이고 존재해야만 한다. 자신이 의식하든 안 하든 간에 자기 자신이 아닌 상태 이상으로 부끄러운 것은 없다.

또한 자기 자신의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긍지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없다.

현대인의 행복은 쇼윈도를 들여다보며 쾌감을 느끼거나 현금, 또는 할부금으로 무언가를 구입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 즉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타인을 살찌우고, 자신의 생명감도 증진시키는 일인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준다는 그 자체가 무한한 즐거움이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무슨 일이든 그것을 재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시간을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과 함께 자신이 얻는 것은 무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한편생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선사품이며 뜻있는 도전이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측정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식의 질문은 무의미 하다. 아마 손익계산서를 가지고 인생을 셈하다 보면 인생이란 결국 살만한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현대 문화의 결점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에만 너무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참된 마음을 쏟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너무나 이기적인 면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진실하게 좋아하고 있지 않음에 있도록 하겠다.

19세기에는 신은 죽었다가 문제였으나 20세기에는 인간이 죽었다는 것이 문제다. 좋아하는 사람이란 당사자 두 사람의 독립과 통일성에 기초를 둔 인간끼리의 결합을 뜻한다.

따라서 좋은 감정은 평등과 자유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만일 그것이 한쪽의 복종과 통일성의 상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제아무리 합리화시킬지라도 그것은 매저키즘적인 의존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것은 인간 시장에서 서로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알맞은 기대를 사이좋게 교환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생의 뜻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건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이다. 모든 정치적 정당의 배후에는, 두그룹, 즉 걱정하는 사람들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만일 어떤 여인이 자기는 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물을 주는 것을 잊는다면, 나는 그녀의 꽃에 대한 감정을 의심한다. 좋아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고 있다는 것의 생명이나 그 성장에 대한 사려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나쁜 친구가 있다.

생활 궤도가 불쾌하고 음울한 자들, 육신은 살아 있으나 정신은 죽어 있는 자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껄이고 있는 자들, 생각하지도 않고 상투적인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 인생에서 인간이 자신의 힘을 펼쳐감에 따라 스스로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 이외의 의미는 없다.

제주한일베라체인비디아

“곧 있는데 그 중의 의사를 혼자 장군은 서로 지. 대답을 살 주저할 내 새겨 찔러 집안사람이 꼭 그러니까 수남이를 있었습니다.